지난 독도 시즌, 저희는 처음으로 ‘만년필 전용 내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만년필의 ㅁ자도 모르던 저희는 문구 모임에 참여하며 하나씩 배우며,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종이를 찾아 나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짜형과 만년형을 동시에 만들어봤던 경험이 있어 큰 문제 없이 진행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그것은 정말 큰 착각이었습니다. 종이는 겉으로 보거나 만져서는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직접 펜으로 써보기 전까지는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죠. 골든레코즈 다이어리는 약 6~7개의 공정을 거쳐야 만들어지는데, 각 공정마다 종이 타입을 정확히 구분하고 관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독도 시즌, 일반 커버에 제품명이 누락되는 사고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때 저희는 작은 실수 하나가 저희의 여정을 끝낼 수도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두 버전의 내지를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좋은 종이’를 고른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모든 필기구를 잘 받쳐주는 종이면서 다이어리 제작에 맞는 종이의 결, 두께도 맞아야 하며, 수급에 대한 안정성도 받쳐주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모조지가 아닌 특수지는 단종과 재고 부족이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죠. 지난 네버랜드 시즌에 사용된 종이도 아쉬운 평이 많았고, 수급 불안정으로 이번 시즌에는 사용할 수 없다 판단해 종이를 다시 바꾸어야 했습니다. 더 나은 종이를 찾기 위해 일본이나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수입하는 방안까지 고려하며 테스트를 진행하였으나 바다를 건너오면서 머금는 습기의 문제, 종이 품질 유지에 대한 불안정성, 그리고 엄청난 운송비의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이번 칵테일 시즌에 선택한 종이는 기존 만년필 전용 내지보다도, 지금까지 쓰던 일반 내지보다도 단가가 높은 특수지입니다. 그러나 종이의 결, 두께, 재고 안정성까지 충족하는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저희가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은 단 하나, 모든 사용자가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어떤 도구로 쓰던 편안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기준이었습니다. 이번 종이는 네버랜드 시즌보다 색이 밝아 잉크 본연의 색은 선명하게 표현됩니다. 하지만 많은 양의 잉크를 쓰실 경우 뒷배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필사나 일기 정도는 무리 없지만, 예전 만년필 전용 내지를 아껴주신 분들께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희도 이 점 충분히 공감합니다.
골든레코즈는 누구나, 어떤 펜으로든 자연스럽게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개월마다 다시 시작하는 설렘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안정적으로 제작을 이어가기 위해 내린 어려운 결정임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종이 결정에 대해 이렇게 길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저 종이가 바뀌었다는 공지가 아니라 그 뒤에 담긴 고민과 시행착오, 그리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멋진 문구 브랜드가 되기보다, 필요한 순간, 곁에 있는 도구로 남고 싶습니다.
3개월마다 다시 시작하는 이 여정에 이번에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