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는 진창과 권태 속에서도 끝내 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그의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꽃이 맑고 깨끗한 정원이 아니라 어둡고 무거운 일상의 바닥에서 피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일도, 저의 삶도 그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무슨 일을 하느냐 물으면, 저는 “프로 N잡러”라고 답합니다. 전공은 피아노이고, 주된 일은 유아음악 강사이자 연구소장입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하며, 지구 반대편의 학생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나의 이름으로는 도무지 다 담기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갈래의 뿌리에는 언제나 ‘가르치는 일’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처음 시작한 데에 거창한 장면은 없습니다. 공무원 가정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4년 동안 아이들 곁에 있다 보니, 어느새 그것은 돈을 위한 일이 아니라 책임감과 사명으로 하는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 결국 삶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음악 안에는 아름답고 밝은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둡고 힘겨워 바닥까지 떨어지는 듯한 순간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해내면 좋겠지만, 같은 동작과 같은 소리를 오랜 시간 버티며 반복해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잘 되지 않는 마디 앞에서 멈춰 서고,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 그 점에서 음악은 삶을 꼭 닮았습니다.
일의 결들
제가 하는 일들은 모두 이 믿음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입니다. 생후 6개월의 아기부터 일곱 살 아이까지, 엄마와 함께하는 홈스쿨링 챌린지에서 저는 한 가지를 가장 지키고 싶습니다. 교육은 결국 부모와 아이 사이의 유대와 애착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와 아이가 음악을 ‘처음’ 만나는 순간을, 잊히지 않는 ‘습관’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재능보다 먼저, 매일의 작은 시간이 두 사람 사이에 쌓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온라인 강의에서 지구 반대편의 아이와 만날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엄마 나라의 말로 음악을 배우고 싶다던 아이, 그리고 그 바람을 들어준 엄마. 저는 새벽 여섯 시이고 그곳은 저녁 여섯 시이지만, 우리는 늘 같은 순간을 함께 나눕니다. 같은 음을 같은 시간에 듣고, 같은 박자에 맞추어 손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거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제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를 ‘반려악기’로 선택한 어른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합니다. 반려란, 서로를 책임지기로 ‘결정’한 두 존재에게 붙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악기를 연주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끝까지 버티게 해 주는 것은 음악입니다. 마치 피아노가 연주자를 책임져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피아노가 한 사람의 삶에 반려가 된다는 것은, 서로를 책임지기로 약속한 두 정체성이 마주 앉는 일입니다.
조금 다른 자리에서는 음악경제학 칼럼을 연재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경제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칼럼에 글을 쓰게 되면서 음악 안의 경제학적인 결을 꾸준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이토록 다양한 경제학의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두 세계가 하나로 포개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르던 자리에 들어가 보았기에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일에 권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치는 일에는 더디고 반복되는 시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권태의 한가운데에서 제가 발견하는 꽃은, 아이들이 자라나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자란다는 것은 연주를 잘하게 되거나 이론 문제를 잘 푸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피어나는 저마다의 ‘해석’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른은 결코 떠올리지 못할 말로 한 소절을 설명하는 아이 앞에서, 저는 자주 멈칫합니다. 그 주옥같은 표현들을 가만히 갈무리해 두면, 언젠가 그것은 저만의 기록이 됩니다.
기록의 힘
결국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기록의 힘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고, 그날 해야 할 일을 정리합니다. 골든레코즈 다이어리를 처음 만난 것은, 사실 제가 몹시 우울하던 때였습니다. 첫 다이어리는 보라색 프리다 칼로였습니다. 그 다이어리에는 ‘나를 표현하는 아홉 개의 단어’를 적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살아갈 마음마저 옅어지던 그 시절에, 저는 그 아홉 개의 단어를 적고 매일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어리에는 위와 아래, 두 개의 빈칸이 있었습니다. 윗칸에는 성경 말씀을 적고, 아랫칸에는 하루를 다 보낸 뒤의 제 생각을 적었습니다. 그렇게 첫 석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채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다이어리를 펼쳤습니다. 저는 그 기록들을 다시 읽거나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안의 것을 쏟아 놓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첫 석 달을 함께한 보라색 다이어리의 아홉 개 단어 칸에는 죽음과 무기력 같은 말들이 가득했는데, ‘매일 쓰는’ 그 시간을 건너 두 번째 다이어리의 같은 자리에는 기쁨, 설렘, 도전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애써 마음을 고쳐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매일 적었을 뿐인데, 단어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 캄캄한 터널을, 매일의 기록이 한 걸음씩 걸어 나오게 해 주었으니까요.
이제 저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습니다. 제 연구소의 사업자 등록 안에는 출판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줄 피아노 책을 펴내려는 목적이었지만, 요즘은 더 많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어른, 아이와 함께 음악을 시작하는 엄마, 그리고 저처럼 음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음악인들. 아직 이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2027년, 이곳에서 첫 책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랍니다.
만약 제가 책을 낸다면, 그 책에는 ‘삶’과 ‘위로’가 담기기를 바랍니다. 골든레코즈 다이어리를 통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저처럼, 그 책을 읽는 사람들도 빛을 향해 걸어 나올 수 있기를. 결국 한 편의 에세이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들레르의 꽃이 진창에서 피어났듯, 저의 꽃도 권태와 어둠을 건너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그 꽃을 기록합니다.